/ 1 7 1 0 1 2 / 평일 관람권 / 가을로 성큼, 후암동에 홀로 서다. - 1
전 날, 날씨는 예고했다. 12일은 꽤 추운 가을날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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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용산에서 시사회를 가기로 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전에 해방촌이라는 후암동에 가 보기로 했다.
전 부터 한 번쯤은 가 볼까 했었는데도 길이 가파르다 하여 매 번 미뤘었거든.
아베크 엘이라는 카페의 시그니처 토스트를 보고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카페는 예쁘장 했다, 요즈음 너무 예쁘고 센세이션한 곳이 많아서 감탄사가 나올 만큼 예쁘진 않았지만서도
부드러운 흰 색이 곳곳에서 포근함을 내뿜고 있었으므로 꽤 안락하기는 했다.
토스트에는 커피.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커피를 시킬까 하다가
여름도 다 지났는데 아직도 청귤 에이드를 판매하길래 함께 주문했다.
청귤에이드는 어디서 마셔도 단 맛과 신 맛이 과하지 않아서 좋아한다.
생각보다 빨리 차려져 나온 아베크엘카페의 계절 토스트.
그러니까 이건, 가을 토스트 인 셈이다.
위쪽 1/3 지점까지는 호박 페이스트와 생크림이, 중간부에는 무화과 잼과 무화과가, 하단에는 사과 잼과 꽃사과가 가지런히, 그리고 꽤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었다.
마치 온통 가을을 대접받는 것처럼.
사과 부분은 식감이, 무화과 부분은 무화과 특유의 독특함이 내 입을 즐겁게 했으며
특히나 호박페이스트가 정말 맛있었다.
적당하게 달큰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의 호박.
사과는 서비스.
어째나 저째나 가을 같은.
포만감에 밖을 나서자 여전히 날이 시렸다.
책방에서는 작은 책을 두 권 사고,
시장에서는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니까, 여기 꼭 거기 같다. 창신동.
가파른 길을 꾸역 꾸역 올라 숨이 헉헉 차오르면, 왠지 이 길을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 찼다가도
뒤를 돌면 온 마을이 한 눈에 보여서 미움과 숨을 동시에 토해내고 마는 그런 동네.
약간은 헤진 몸을 이끌고 108 계단 바로 앞에 있는 미미롱이라는 베이커리 카페에 들어섰다.
이렇게 추운 날, 아주 작은 가게는 창문도 닫지 않았고, 나는 기꺼이 그 자리를 마다하지 않기로 했다.
추우시면 문을 좀 닫아드릴까요, 여쭤왔지만
나는 무엇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밀려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와 뒤 쪽에서 풍겨오는 달큰한 빵 냄새와 차가운 커피 때문에 꽁꽁 얼어버린 손과 들려오는 낯선 노래 중
어느 것도 말이다.
뿌연 하늘 너머로 해가 졌다.
사실 그렇듯, 노을은 일상의 뻔한 풍경 중 하나인 것을 모르지 않는다.
오늘의 태양이건 내일의 태양이건 생긴 것은 똑같고- 색도 비스무리 하며, 그저 위에서 아래로 수욱 떨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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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가만히 멈추어 서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끝내는 셔터를 누르고 오늘을 잊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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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보면서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해본다.
참, 고양이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조막만한 몸뚱이를 가지고 저 깊은 눈망울로 눈을 마주쳐 올 때는 나는 온 몸을 부르르 떨 수 밖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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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집 밖을 처음 나섰을 때는 나는 오늘 좀 피곤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일단은 후암동에 매우 기대가 없었으며, (이전에 망원동에서 너무 실망한 터였다.) 꽤 오래 걸어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것이 몸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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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걱정과 달리 이곳은 평안하고 고요했으며, 이방인에게 아주 친절한 동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