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숙소에 놓고 온 물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밖을 보니 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최악의 아침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나는 비가 오는 날에 배 타는 것을 정말로 좋아했기 때문에 배를 탈 핑계가 생긴 것에 감사했다. 비는 꼭 물이 바스러지듯 내렸다. 맞아도 될 것 같아 맞기로 했다.
가는 배에서는 대뜸 중국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이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혼자 말을 이었다. 나는 그저 허허, 하고 웃을 밖에. 아주머니는 학!학!학! 하고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물건을 수월하게 되찾고서 다시 섬으로 향했다. 비가 오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얇은 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내가, 아마도 중국인들 눈에는 이상해 보였을 거다. 어딜 봐도 살을 드러내는 사람은 나 밖에 없거니와, 심지어 그들은 꽁꽁 싸맨 후에도 목도리 까지 하는데…. 꽤 많은 시선들이 꽂혔다. 배를 기다리는 도중에 춥지 않느냐 말을 걸어올 정도였다. 중국어를 못 알아들어도 그 정도는 눈치껏 알아챌 수 있었다. 허허, 소박하게 웃어 보였다. 중국 사람들은 꽤 따듯하다.
배를 타자 나는 주책없이 설렜다. 톡톡 내리는 비와 좋아하는 노래와 시끌벅적한 중국과 중국인. 앉아서 사진을 찍는데 앞의 아주머니가 본인 때문에 혹시나 불편할까봐 자리를 피해주었다. 이왕 찍을 거, 자리를 그 분에게 드리고 나는 서서 비를 맞았다. 비를 맞기를 잘했다.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눈앞으로 색이 화려한 배 한 척이 지나쳤다. 날이 흐려서, 물과 하늘의 경계가 없었는데, 배가 그 경계를 만들어냈다. 비 냄새가 훅, 짙게 내려앉았다.
구랑위에 도착하니 점심이 아직인 시간이었다.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있고, 내린다기보다는 부서지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계속 비를 맞기로 했다.
오늘 먹을 건 어제 정해놓았다. 바로 구랑위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창펀! 신서유기에서도 나온 적 있는 음식이다. 비가 오는데도 줄이 길었다. 한참을 줄을 서서 받은 창펀은 생긴 게 단촐 했지만, 정말로 유명할 만한 맛이었다. 기름진데 구수하고 입을 감싸는 맛에, 소스가 밴 반죽의 식감이 감칠맛을 더했다. 얘도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좋을 텐데, 하나 더 먹을까 하다가 다른 걸 먹으려고 참았다.
뒤돌아서니 타코야끼처럼 생긴 새우 계란빵이 있었다. 달걀이 반죽에 들어가는 게 아니고 메추리알을 깨서 직접 넣어 굴리는 게 신기했다. 고소하고 따끈하고, 새우는 탱글하고, 신이 나는 맛!
길에서 음식을 먹는 걸, 나는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길거리 음식을 참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길에서 음식을 먹는 게 보편적이지는 않으니 나 역시 조금 민망할 때가 많았는데, 여기선 다들 길에서 먹으니 속이 편했다. 걸으며 먹고 걸으며 먹고, 먹는 동시에 소화가 되니 얼마나 좋은데.
걷다가 보니 아쿠아리움 앞이었다.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언제 다시 오겠나 싶어 들어갔다.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았는데 내부가 정말로… 조악했다. 아쿠아리움을 잘 안가는 내가 봐도 조악했다. 이게 뭐지. 그랬으면 실망을 했어야 하는데, 거꾸로 나는 너무 웃겼다. 웃겨서 즐거웠다. 물 색깔이 탁한 것도 너무 웃기고, 물고기 생긴 모양새도 웃기고, 나름 그 안을 꾸며놓은 것도 웃기고, 이런 곳에 살고 있는 얘네가 불쌍한 것도 웃기면 안 되는데 웃겼다. 안에서 한참을 웃었다. 해저 터널에서도 역시나 웃음 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 와중에 나는 사진을 많이도 찍었더라…. 밤에 사진을 정리하는데 그게 제일 웃겼다.
아쿠아리움 같지 않은 아쿠아리움을 나와 걷는데, 수조에 물고기를 담아놓고 건져서 파는 식당이 보였다. 아쿠아리움 같네…, 그런 생각을 했다. 한참을 또 서서 웃었다. 나는 아쿠아리움 티켓을 샀다고 생각했다, 웃음 값 치고는 저렴했다.
그 식당에서 나는 랍스터를 먹었다. 사이즈 별로 가격이 달랐는데 사이즈가 달라도 맛은 똑같았다. 살이 달콤했고, 소스가 매혹적이었다. 어딜 가나 랍스터를 파는 구랑위, 이 곳이 천국이다.
저녁은 맥도날드에서 먹고 싶었다. 구랑위의 맥도날드는 아주 우아한 건물에 있었기에, 는 핑계이고 나는 맥도날드를 좋아하니까.
들어가니 딸기 음료를 판매하고 있었다. 딸기잼 맛이 날까 걱정했는데, 상큼하고 괜찮았다. 노트북을 들고 갔기 때문에 글을 좀 쓰다가 식사를 포장하여 숙소로 향헀다.
이미 밖은 어두컴컴했고, 비는 굵어졌지만 그래봤자 스프링클러 반조차도 따라가지 못하는 빗줄기여서 피할 생각 없이 느긋이 걸었다. 선착장 근처 야경은, 마음이 뿌듯했다. 나는 이 곳에 온 이유를, 어제부터 쉼 없이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포장해 온 것을 먹고, 쉬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안녕 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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